남자가 옷을 구매하고 입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Ready-to-Wear (RTW – 기성복)을 있는 그대로 입는 것이고, 두 번째는 RTW를 사서 로컬 테일러에게 맡겨 수선 후 입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구매 단계에서부터 ‘customization’이 포함된 Made-to-Measure (MTM)이나 Bespoke (비스포크)를 통해 체형에 맞게 옷을 만드는 방법이다. 각각이 장단점이 있고, 체형에 따라, 취향에 따라, 그리고 상황에 따라 옷을 입는 방법이 달라지기 때문에 등급을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2013년 4월, 블루오션과 같은 남성 패션 시장에 IT를 활용하여 한국 남성 패션의 market inefficiency를 해결하겠다는 스타트업이 생겨났다. 이 스타트업은 3가지 핵심 역량을 도전장으로 내밀었다. (1) Mass-customization, (2) online-to-offline (O2O), 그리고 (3) 스타일 컨설팅. 한국 시장에서 계속 운영을 하다 보면 한국인 체형에 대한 깊은 통찰이 생길 테고 고객마다 다른 사이즈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으므로 멀지 않아 커스텀 의류를 대량 생산할 수 있을 거라는 첫 번째 역량과 Brick & Mortar를 없애고 중간 업자들을 제거해 Direct-to-consumer 모델을 구축하겠다는 두 번째 역량, 그리고 국내 스타일 전문가들을 스카우트해서 어떤 원단을 고르고, 어떤 스타일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는 고객들을 위해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세 번째 역량을 내세워 아주 빠르게 지난 4년간 성장해왔다.

비스포크-MTM-RTW 사이 어딘가를 겨냥해 효율적인 공정방식과 검증된 품질로 승부를 보겠다는 포부 자체는 좋았다. 그래서인지 시작 1년 만에 고객 1만 명 달성, 1년 반 만에 시리즈 A 투자, 그 후 또 1년 만에 시리즈 B 펀딩까지 시장의 기대치는 높았고 이 스타트업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이 스타트업은 바로 Stripes (스트라입스).

내가 이 회사를 알게 된 건 2016년 봄. 호기심에 셔츠 몇 장과 수트 한 벌을 구매해 봤다. 제품 자체는 아주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그런 품질이었다. 40만 원대 수트치고는 괜찮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만족하지는 않았기에 그 뒤로는 원래 구매해오던 수트서플라이나 셔츠는 Propercloth.com을 이용했다. 그래도 스트라입스의 아이디어나 시장에 내민 도전장이 신선했기에 계속 응원하던 차에…

회사가 휘청휘청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벤처업계를 신봉하고 언젠가는 다시 뛰어들 생각을 안고 사는 나에게는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그리고 스트라입스가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빠른 트랙에 앉아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제 3자 입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문제점들을 적어본다.

스트라입스에게 왜 위기가 닥쳤을까?

1. Management – “1966년”에 머물러 있는 도태된 리더십 및 기업문화

아니 뭐, 다 떠나서 이게 제일 중요하다. 이것만 해결되어도 나머지는 구성원들이 알아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겠다.

익명 평가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는 인사채용플랫폼 잡플래닛에서 스트라입스에 대한 최근 평가를 몇가지 가져와 봤다 (2017년, 2016년 하반기)

전체 리뷰 (19건)의 평균 통계다.

회사 사정은 직원이 제일 잘 안다. 성공(이라 쓰고 엑싯?)의 꿈을 팔아 먹고사는 스타트업에게는” 직원이 전망하는 성장 가능성”과 “이 기업의 CEO지지율”이란 항목은 매우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 막말로 어떤 VC가 팀원들이 자기 팀과 리더에게 믿음이 없는 회사에 투자하고 싶겠는가. 기대치가 Fundamental 재무분석 기법을 압도하는 시장이 벤처시장이다. 지금 테슬라가 수익이 잘 안 나도 미래에 대한 기대와 일론 머스크에 대한 기대 하나로 포드나 GM의 시가총액을 씹어먹듯, 리더십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 없이 크다. 또한, 비즈니스 모델이 지금 당장은 돈이 안 되어도, 그리고 들이붓는 돈은 천문학적인 금액이어도, 직원들만큼은 비즈니스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스트라입스에는 그게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야근을 강요하고, 대기업식 영업압박 문화가 형성되며 업무에 대한 프로세스가 엉망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스타트업처럼 능동적인 형태의 조직은 관리자보다는 같이 일하는 동반자식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총체적 난국으로 보이는 게 내 관점. 리더십의 변화, 혹은 어쩌면 아예 새로운 인물 및 인력이 유입되어야 만 해결 될 수있는 문제로 보이기까지 한다.
다른 회사들은 어떻게 하는지 Best-In-Class 벤치마킹이 필요하다. 리더십이 이론만 알고 있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지만, at least that’s a fucking start.

2. Brand – 애매한 포지셔닝

Brand Identity – IT회사 같은 이름과 로고

물론 스트라입스는 애초부터 기술을 패션산업에 적용하겠다고 나선 회사다. 그렇지만 패션산업만큼 Purist들이 많은 산업도 잘 없다. 심지어 Non-purist들도 Purity를 원한다 (본인들이 Purist라 생각하지만, 사실 아닌 경우가 많긴 하다). Purist들은 클래식을 선호하는 사람들이다. 클래식을 제대로 전달하는 패션 하우스는 성장만 거듭해왔다. 불황에도 리베라노&리베라노 같은 브랜드는 흔들리지 않는다. 스트라입스는 그렇다고 해서 Contemporary 룩을 지향하는 브랜드도 아니다 (ex. Theory, COS). 그냥 애매하다. 가장 중요한 건 아니지만, 업의 본질과 기업의 브랜드 정체성이 확립된 이후에는 그에 걸맞은 디자인이 나와 주어야 한다. 스트라입스의 로고나 브랜드 이름 자체로는 IT 기술을 활용한 모바일 결제 스타트업 느낌이 많이 난다 (실제로 미국에 ‘stripe’이라는 온라인 결제 플랫폼 유니콘이 있음). 네이밍은 그렇다 치고, 로고라도 옷 만드는 회사 느낌이 나게 만들어야 하는데, 너무 모던하고, 너무 IT 회사스러운 느낌이다.

참.. 숙연해지는 로고다 (…)

 

미국 크레딧 프로세싱 플랫폼 Stripe의 로고. 비슷하다는 건 아니고… 둘 다 그냥 IT스타트업에 잘 어울린다…

어중간한 Target Audience

스트라입스의 주 고객층은 옷과 핏에 관심이 좀 있는 직장인들인 것으로 추측된다. 좋은 옷, 예쁜 옷을 발 벗고 찾아다니는 옷 덕후가 아니라, 그냥 옷에 좀 관심이 있고, 와이샤스 아재 군단에 합류하기 싫을 뿐인 고객층이다. 이러한 중간지점 대에 걸쳐있는 고객층에는 깨나 steep 한 Learning Curve가 적용될 수 있다.

컴퓨터로 그리기 힘들어서 손으로 그림…졸려서…

내가 봤을 때 이 고객층 사람들은 처음에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바느질도 제대로 못 한 싸구려 수트나 셔츠를 사 입다가 (돈도 없으니) 점점 옷에 관심이 생긴다. 그래서 인근 백화점이나 아울렛에 입점해 있는 TNGT, BON과 같은 기성복 브랜드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 요샌 하도 잘 나와서 꽤 이 지점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다가, 시간도 흐르고 관심이 있으니 비교도 하기 시작하고, 직접 알아보기도 하고 (덴츠 AISAS 모델을 참조), 고객이 직접 공부하게 된다. 그러다가 정말 아주 잘 만든 수트와 셔츠에 눈이 가게 되는 거다. 물론 이 과정에서 스트라입스는 아주 잠깐 고객의 눈에 들어오고 바로 convert 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공부할 시간이 어딨냐고? 이럴 시간이 없는 사람들은 아예 스트라입스의 고객층이 아니거나, 아니면 고객층은 맞는데 돈을 너무 잘 벌어서 단번에 MTM/Bespoke 레벨로 전환하는 고객들이 많을 것이다.
물론 이 고객층 만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아예 스트라입스가 형성한 가격대 이상으로는 지불의사가 없는 고객층은 떨어져 나갈 거고, 나머지를 상대로 ‘치고 빠지는’ 전략을 취할 수도 있겠다. 문제는 재구매율인데, 이 산업은 새로운 고객 유치가 정말 어려운 산업인 만큼, 기존 고객의 재구매율이 매우 높아야 비즈니스가 성공하는 구조다. 위에서 말했듯 아예 의류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지거나 지불의사가격대 (willingness to pay point)가 수익화 실현이 불가능한 고객들을 제외하면 사실 대부분이 빠른 learning curve를 가진 고객층이란 얘기다.
이 사람들은 옷을 좋아하기도 하며, 또 아재 부대에 끼지 않고 나만의 개성을 챙기는 것을 자랑스러워 하고, 또 동시에 소위 장인이 만들어 내는 ‘잘 만든’ 제품에 대한 appreciation도 가진 사람들이다. 게다가 그중 많은 사람이 의류에 대한 지불의사가격대가 높이 형성되어 있을 것이다. 쉽게 말해서, 스트라입스 몇 번 입어보다가 금방 인근 비스포크 및 MTM을 방문하거나 프리미엄 RTW를 찾게 되는 사람들이 스트라입스가 잡고 있는 타겟 고객층인 셈이다.

3. Marketing

Tacky한 마케팅

스트라입스의 “저널”을 내려 읽어보다가 충격 받았다.

자기 제품에 대해 끊임없이 얘기 하기도 모자랄 판에, 아예 안 하느니만 못한 이런 글이 올라와 있었다. “상위 1%”, “재벌 3세”, “법조인”등을 형상화 하고 우상화 하는 글 말이다. 배우 유아인 (영화 베테랑)이나 유지태 (드라마 굿와이프) 분들이 잘못했다는 건 전혀 아니고, 이걸 갖고 마케팅에 활용한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스트라입스 수트도 아니고, 영화배우가 영화에 입고 나온 수트에 대해 쓰려니 당연히 할 말이 딱 한 줄이지…

본질적 고민을 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자기 얘기를 하고, 자기 제품에 대해 얘기하고, 만드는 원단에 대해 얘기하고, 얼마나 할 얘기가 많은데… 왜 자처해서 GQ식 리뷰를 하냐는 거다. 소비자를 과소평가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소비자는 엔트리 레벨이다’라고 잡고 엔트리 글 만을 어셈블리 공장에서 찍어내리듯 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소비자는 항상 더 성숙하다.

같은 업계는 아니지만 시계업계에서 가장 핫한 사이트인 호딩키의 시계 리뷰를 한번 보자.

고관여제품을 팔려면 이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겠나. 참고로 이건 내 시계의 옛날 모델. 나도 이거 보고 구매결정했다.

고관여 제품을 팔려면 이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겠나. 자세히 읽어보실 분들은 여기를 참조

4. Externalities – 외부 요소

경쟁 심화

디지털과 소셜미디어의 발달 (하..이젠 말하기도 참 식상하다)로 비스포크 브랜드들이나 MTM들이 소비자에게 다가서기가 훨씬 편해졌다. 비스포크 장인들은 너도나도 인스타스타가 되어가고 있고, 이런게 구매로 이어지는 효과를 보고 있기도 하다. 공급은 조절하면서 수요는 폭발하는게 요즘 잘나가는 비스포크 브랜드들이다. 위로는 이렇게 치고 쭉 올라가고 있고, 아래로는 기성복들이 활발히 성장하고 있다. 하이엔드 Made-to-measure 및 비스포크 라인과 이른 바 ‘스마트 정장’ 사이에서 고군분투중. 가격대도 낮은 편도, 그렇다고 해서 아예 높지도 않은 어정쩡한 층에 형성되어 있어서 고객들은 ‘이럴 거면 차라리 기성복 좋은 것 사서 줄이겠다’는 생각이 큰가 보다. 더군다나 핏이 주는 차이는 사실 기성복 조금만 수선하면 reconcile 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기성복 브랜드 들도 이 점을 잘 안다는 듯, 매장 내 수선 서비스를 따로 제공하고 있다. 그걸 떠나 가격대도 합리적인 데다가 이제는 명품 기성복 수트 브랜드인 라르디니가 한국에 상륙했다 (신세계인터네셔널). 정용진 부회장이 분명히 임팩을 줬으리라. 회장님 취향 굿 이마트의 PL인 데이즈와도 콜래보를 할 만큼…친숙하게 다가온다. 가격도 정말 저렴하고. 100만원이 넘는 브랜드를 10만원 선에 입을 수 있다는 엄청난 장점으로 인해 큰 인기다. 위 아래로 쪼여오는 오늘 날의 남성 패션 시장에서 스트라입스는 제대로 된 전략과 SKU를 정비하지 않으면 망할 수도 있다.

 

테일러 인건비가 저렴한 한국

위의 서론으로 잠시 돌아가보자. 남자가 (여자도 이건 마찬가지지만) 옷을 입는 방법은 크게 3가지가 있다. RTW를 그냥 입는 방법, RTW를 구매해서 테일러에게 맡기는 방법, 그리고 MTM이나 비스포크를 구매하는 방법. 한국시장에 로컬 테일러는 넘쳐 난다. 한국의 웬만한 동네는 옷 수선집이 있고 수선집마다 경력 2~30년씩 벨트 아래 두르고 계시는 분들이 있다. 그런 장인들이 또 가격은 수선 당 1만 원, 2만 원을 넘지 않는다. 테일러 비즈니스도 사실 WoM에 크게 의존하고 long-term CRM에 의존한다 (한 번 만족하면 앞으로 구매하는 모든 옷은 다 그쪽으로 맡기는게 인지상정). 좀 소문이 자자하고 실력을 제대로 인정받는 테일러들도 수선가가 아주 높지는 않다. 그럴거면 차라리 기성복 사서 수선을 맡기는 게, 스트라입스 브랜드 셔츠를 사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요약하자면, 스트라입스에게는 크게 3가지 문제가 있다. 경영진/리더십의 문제, 브랜딩의 문제, 그리고 시장적 한계. 아직 희망적인 부분은 그래도 스트라입스는 선두주자고, 이미 시장에서 구른 경험이 있으며, 아웃소싱이 아닌 자체 공정 (당연한건가…)이 가능한 공장설비를 갖추고 있다. 공급사슬 관리가 가능하고, 문제점이 파악이 되면 해결할 수 있는 여지는 많다. 올해 5월에 리브랜딩 및 제품 리뉴얼/리런칭을 한다고 하니 기대해 볼만은 한 것 같다. Remember, even non-purists tend to think they are purists. So targeting purists is an ideal market.

위에선 적지 않았지만 turnover rate도 리스크중 하나다. 주문 하면 옷이 만들어지고 End User에게 떨어지는 시간이 너무 길다. 나도 수트 한 벌에 셔츠 한 벌 받는 데까지 열흘 넘게 걸렸던 것 같다. 아무리 제작기간이 걸린다고 해도, 줄일 수 있는 부분은 많을 것이다.

Disclaimer**

나는 스트라입스 투자자도 아니고, 뭐도 아니다 사실 하하. 그냥 지나가는 사람의 생각일 뿐. 인사이더 정보는 잡플래닛 정보가 사실 99%다. 1%는 “회사가 어렵다, 직원 1/3 축소했다”고만 들은게 전부다. 위에서도 말했듯 사정은 내부자들이 훨씬 더 잘 알 거다. 글도 사실 외부자 시선에서 보는 관점일 뿐, comprehensive 한 리서치가 이루어진 글은 아니다.

마지막으로는 이 글은 스트라입스를 비난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 고객으로서, 또 한국에서도 패션테크가 성장하고 스트라입스가 그 정상에 서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쓰는 글이다. 장기적으로 문제해결을 위한 문제인식에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데미지가 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